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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품


구도 소설의 결정판! 힌두교인들은 삶 자체를 구도의 과정으로 본다. 그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심신을 단련하는 단계. 둘째,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기르는 단계. 셋째, 고행과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구하는 단계. 넷째, 삶을 정리하면서 떠돌이 생활하는 단계. 그 과정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아르타(유익), 카마(사랑, 쾌락), 모크샤(해탈) 등이며, 모크샤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지고의 목적임은 물론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다르마이다. 이 소설은 이 다르마의 과정을 앓음답고도 쫀득쫀득한 언어로 버무린독특한 형식으로 보여준다.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해를 등지고 걸어가는 순례자의 등을 바래며, 시동은 울고 있었다. 그의 모습이 촛불 크기만 해졌을 때, 시동은 뒤늦게 황황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가, 무릎 꿇고, 흙바닥에 이마를 끌박듯이 해, 절하고, 또 절하고 했다. 그러다 눈을 들어 그 녘을 보았을 땐, 그 하나의 촛불 은 사라져, 보이지 안했으나, 거기 어디 그때도 빛은 있었다. 발자국은 한 개도 없었다. 시동은, 울고 있었다."(484쪽) "모든길은그러나시작에물려있음을! 아으, 그런즉슨, 시작하지 말지어다!"(486쪽)
동서고금 종교 신화 철학을 아우르는 심오하고도 방대한 사유와 우주적 상상력으로 한국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다져온 작가 박상륭의 신작. 작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글을 잡설(雜說)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잡설이란 경전과 소설 사이에 있는 글 이라는 뜻이다. 중생들이 경전을 읽어 이해하기 쉽지 않으므로, 중생들의 귀에 들어가도록 호소력 있게 쓴 글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품(品)은 금강경 등의 불교 경전에서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는 형식이다.

잡설품(雜說品) 은 200자 원고지 2천 매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에, 등단 이후 40년 넘게 농축되어온 박상륭 문학의 정수를 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이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죽음의 한 연구 의 제5부가 될 마지막 책인 셈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중국 선종의 육조대사 혜능을 주인공으로 한 죽음의 한 연구 가 제1부라면, 여기에 이어지는 3부작 소설 칠조어론(七祖語論) 은 혜능 이후 대가 끊긴 선종의 칠조대사를 가상으로 내세운 제2부부터 제4부까지이다. 여기에 마침표를 찍는 잡설품(雜說品) 이 제5부가 되는데 역시 가상의 인물인 팔조대사가 등장한다.
(물론 5부작이라고는 하나 연속되는 이야기가 아니니 죽음의 한 연구 , 칠조어론(七祖語論) , 잡설품(雜說品) 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 일련의 소설에 대해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하면 육조는 죽음과 삶의 문제를 탐구하고, 칠조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난행고행을 하며, 팔조는 인간의 해탈을 이루고자 한다. 그런데 이러한 탐구의 과정이 선불교만을 통해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라, 불교, 기독교, 천주교, 힌두교, 라마교, 조로아스터교, 자이나교 등의 다양한 종교와 철학, 민담, 패설, 신화 등을 넘나들며 하나의 소설, 박상륭의 표현대로라면 하나의 잡설로 형상화된다.

일반 독자로서는 그의 지식과 사유의 깊이에 허우적거리며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고급 소설의 진수를 맛보게 될 것이다.


자라투스트라 박상륭을 기다리며_김윤식

1. 家出
2. 카마(愛)
3. 아르타(義·意)
4. 宇宙樹-익드라실
5. 時中
6. 所中
7. 달마(法)
8. 목샤(解脫), 혹은 出家



해설│쓰러지는 우주를 말로 쌓기_김진석